Joie de Vivre

공주님(?) 방에 활짝 핀 꽃들

디돌 2011. 5. 31. 15:51

지극히 평범한 자식의 성향에 비해, 우리 엄마는 그 취향이 변화무쌍하다. 기본적으로 식물에 대한 욕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매해 선호하시는 대상이 달라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행운목을 비롯한 큰 식물을 방에 들여 놓고, 수시로 손으로 만지시며 애정을 표현하시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그 대상이 예쁜 꽃으로 바뀌었다. 살금살금 화분을 바꿔치기 하시더니, 급기야는 엄마방에는 이제 꽃만 두시겠다고 선언아닌 선언을 하신다. 한창 큰 나무에 관심이 있으실때는 울긋불긋한 꽃은 이제 천하다니 어쩌니 하시던 모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진다. 우린 그런 엄마를 공주님이라고 부른다. 공주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당신이 원하시는대로 다 말씀하시고 표현하시며 살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왕비가 아니고 공주님이냐고? 왕비님의 근엄함 보다는 아직도 소녀같은 풋풋함도 가지고 계실뿐만 아니라, 요즘 부쩍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과 당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말씀이 많으시기 때문이다.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호호거리시는 엄마의 모습은 무엇하나 숨길 것 없는 행복한 어린 공주님의 모습이다. 물론 때론 심술궂은 할머니 본연의 모습을 보일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 엄만 요즘 행복한 공주님이시다. 이런 잔뜩 흐린 날에도 공주님의 방에 들어 서면, 아름답게 핀 장미 꽃부터 우아하게 핀 흰 군자 꽃까지 어느 한 구석 행복하지 않을 것이 없어 보인다. 

가끔 식사때가 되어 열린 문으로 살짝 들여다 보면, 고운 나무 손잡이가 달린 거율을 들고 얼굴이며 목을 열심히 들여다 보시는 그 모습도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라고 묻는 동화속의 공주님이다. 그런 공주님은 뜨거운 음식이 식을까봐 조금 일찍 나오시라 하면, 나오시면서 식탁을 쓱 보시고 '다 차리지도 않고 부르냐?' 라며 역정을 내신다. 그럼 익숙치 않은 부엌에 가뜩이나 흥분해 있던 농부는 자신의 신분도 잊은채 하늘같은 공주님께 냅다 소리를 지른다. "앉으시라고요. 지금 국만 푸면 된다니까요! 담에 음식도 다 안차리고 빨리 나오라고 소리만 질러 봐라..."  

사실 엄마를 공주님이라고 처음 부른 사람은 이 농부가 아니다. 언제적부턴가 매년 여름 방학 끝물에 한국에 사는 나를 위해 일주일정도 방문해주는 천사같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처음 엄마를 보자 한 말이, '할머니가 아닌 소녀같은 공주님이야' 였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보다도 한창이나 젊은 자기 엄마는 잘 웃지도 않는데, 호호 거리며 웃는 우리 엄마 모습이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이년전 방문했을때는 아침 산책에 나선 엄마의 모습을 보고 함께왔던 또 다른 친구에게 '너 이제 알겠지? 동네에서 산책하시는 모습도 공주님이야. 모자 쓰시고 예쁜 브라우스 입고, 한여름인데도 하얀 장갑끼시고, 하하!'라고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아, 한여름에 왜 장갑을 끼시냐고? 정답은 손이 검게 타시는 걸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런 공주님이기에 자식도 황실(?)의 일원처럼 차려입기를 자주 요구하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집에서는 소위 추리닝이 만구의 진리인데, 집 앞에 있는 곰국 먹으러 나가실때도 자식의 옷차림에 불평이 많으시다. 어떨 땐 대충 입고 따라 나선 자식이 부끄럽다며 잔뜩 골을 내신다. 예전같으면, '그럼 그만 두시라고요. 나가지 말고 집에서 드시지요.'라며 찬바람 쌩쌩 불게 답했겠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진 자식이다. '왜, 이옷이 맘에 안드시나요, 공주님? 그럼 뭘로 갈아 입을까요?' 는 기본이고, 농부도 모자까지 덮어 쓴다, 비록 야구 모자라도, ㅎㅎ...

그런 공주님이지만, 그녀에게 변하지 않는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언제나 변함없는 헌신적인 엄마라는 사실이다. 오늘도 한달에 한번 가시는 병원을 다녀 오시면서, 또 꿋꿋하게 양 손에 뭔가를 가득 들고 오셔서 현관을 들어서기 무섭게 어리광을 부리신다. 장바구니 안엔 양손으로 들기도 버거운 커다란 양배추며, 찐 옥수수 등이 가득 들어 있다. 모자를 벗으시자 이마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마나 들고 오시느라 힘드셨는지 저절로 알게 해 준다. 자식은 또 화가 난다. 저, 저 양배추는 이틀전 시장볼때 큰 놈으로 하나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고, 그런 양배추를 들어 보시면서 삶아서 쌈싸먹자 하셨는데, 아무리 냉장고가 둘이라해도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면 실속은 없고 이유도 모르게 꽉차는 경우의 일례이다. 찐 옥수수는 또 어찌 큰 놈들로 고르셨는지 한사람이 하나씩 들고 먹기에는 한끼 분량이다. 냅다 소리를 지르려던 농부는 가까스로 화를 누르고 혼잣 말을 한다. "힘도 좋으시지. 나는 저 양배추 하나도 제대로 못들겠구만. 참 힘도 좋으시다니까!!!"

그런 자식의 툴툴거림은 들리지도 않으신가 보다. 당신 방안에 들어 서시면서 그녀를 반기는 꽃에 다시 예쁜 우리의 공주님이 되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