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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디돌 2018. 9. 17. 13:23

오만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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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글은 읽는 그 시점의 상황과 나이에 맞게 이해되고 공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인 오스틴의 글을 좋아하지만 그저 막연히 스토리만 쫓아간 책이 ‘오만과 편견’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요즘들어서는 이 간단한 두 단어, ‘오만과 편견’ 이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자리하고 있는지 새삼 놀라고 있는 중이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방송을 접하지 않고 산지가 십수년이 넘은 것 같다. 물론 울 엄마가 계실땐 그 방에 TV가 있었고 가끔은 불려 들어가 드라마 본연의 스토리와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진 새로운 선과악의 극한 이야기를 들어내느니라 애를 쓴 적도 있다. 보청기를 끼고 볼륨을 크게 해도 본인의 건강 상태나 감정이입에 따라 잘 들릴지 않으니 탤렌트들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가장 큰 요인인 당신의 선입견에 따라 그들의 포지셔닝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그냥 조금만 같이 보고 있어도 한결같은 스토리들이라 금방 파악이 되는지라 산으로 간 엄마의 스토리에 입을 딱 벌린지가 한두번이 아니다. 가끔은 크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욕설도 동반된다; “저런 나쁜 X, 남의 남편을 뺏고도 저리 본 부인을 못 살게 굴어, 에이 못된 X, 너는 천벌을 받을 거다!!!’ 

 

울 엄마의 극성스런 편가르기와는 다르지만, 요즘따라 내면에서 무럭무럭 키워온, 그러나 제대로 인식조차 해보지 않았던 문제들이 ‘나도 여기 있소!” 라며 커밍 아웃하고 있는중이다. 아, 물론 울 엄마와는 다른 경우로 요즘 방송을 접하면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요즘 왠지 세상다반사가 궁금해졌을뿐만 아니라 점점 띨띨해져가는 언어에 걱정도 되고해서 모 외국방송을 매일 한시간 정도씩 시청하고 있다. 방송에는 각양각색의 주제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이끄는 정말 다양한 진행자들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등장해서 말들을 쏟아낸다. 무의식 중에 저 진행자는 ‘참, 진행이 매끄럽고 신뢰가 간다’, 그런데 ‘저 남자 앵커는 허풍선이 같다’ 등등의 온갖 잣대를 대고 있었다. 

 

그 방송에서 두서너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Richard Quest 라는 사람이 있다. 예전에 그가 잔뜩 쉰 목소리로 “Richard means Business!” 를 외치면 내 속에서는 짜증이 스멀스멀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말처럼 긴 얼굴, 촌스러울 정도의 통넓은 바지 정장, 뜬금없는 중절모,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버하는 듯한 그의 행동과 쉰 목소리...그가 온갖 열정을 기울여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인터뷰는 그새 솟아 오른 편견의 벽에 부딪혀 나가떨어진다. 그래서, 내가 그의 의견을 잘 듣고 참고하지 않아서 business 가 흥하지 않았나라는 농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그가 내게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Wonder of World’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이다. 그가 변한 것은 없다.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일뿐 그의 외양과 목소리는 그대로이다. 여전히 지나치다 싶은 자신만만한 톤도 그렇다. 그런 그가 베를린 교외 반제에 위치한 한 건물의 계단에 않아 연신 눈물을 훔친다. 그는 유대인이고, 그곳은 1942년 1월 20일, 그 악명높은 홀로코스트의 전초전이 된 반제 회의 (Wannsee Conference) 가 열린 곳이다. 15명의 고위 나치당원과 정부관리들이 모여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 (Final Solution)’ 수행에 관해 논의한 곳이다.  그리고 그들이 작성한 문서에서 처럼 ‘from east to west’, 전 유럽에서 600만명에 이르는 학살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는 다시 베를린의 러시아 출신 희극 댄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Peggy Gou 라는 한국출신의 유명 클럽 DJ 와 해맑게 리듬을 탄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눈물의 헤픔을 싫어하는 사람이 그가 안경을 벗으며 눈물을 닦을때, 그리고 엉거주춤 일어나며 ‘여기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 며 자리를 뜰 때, 더이상 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반감이 남아 있을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이 블로그를 보고 이리저리 힌트를 찾아서 만나러 오신 분이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도 글쓴이의 넉넉하지 많은 몸매와 글의 내용이 매칭이 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씀하셨다. 넉넉하고 모든 것을 품을 것 같은 그런 사람... 의 외양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가끔은 처음 뵙는 분들이 첫인상을 얘기하면, ‘또 그 첫인상...’ 이라며 억울해하는 면도 없지 않다. 우리는 매일 어떤 식으로든 생명을 가진 대상들과 마주치며 공존하고 있다. 삶이란 그 생명이 중요하며, 그를 둘러싼 외양은 마지막 순간에 아무 것도 아닌, 모두 벗어질 것임을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들이다. 

 

이제부터는 Quest 씨에 대한 반감을 거둬들였듯이 다름에 대해, 다른 기준을 가진 대상들에 대해 부드럽게 손을 내밀고 싶다. 그리고 귀 기울여 그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 내 얘기만이 중요하다는 오만을 버리고, 그들은 부족하고 다를 것이라는 편견도 저 멀리 던져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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