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h’s Daily Bliss

제초제 사건과 초여름에 만개한 꽃들 본문

Who Cares? "We Do Care!"/Our Planet & Healthy Life

제초제 사건과 초여름에 만개한 꽃들

디돌 2012. 6. 17. 20:42

작은 정원엔 잔디와 잡초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지난해 8월말에 이사를 올때는 한여름의 무성함이 끝나가는 시점이라 관리에 대한 걱정도 없었고 그저 좋기만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주는 그 좋아하는 정원땜에 관리아저씨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야 말았다. 부끄럽게도 말만 농부인 본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얼마나 편리성만을 강조하는지 눈물나게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일전에 민트등 허브를 심다가 관리 아저씨 한분과 우연히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잡초를 모두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릴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 농부는 순간 말을 잃었다. 봄철 내내 쑥을 관리하며 뜯어 이것저것 해드실 뿐만 아니라 농부가 모르는 나물을 발견하곤 오후내내 캐서 반찬해 드시며 좋아하시는 울엄마, 그리고 적어도 하루 세번은 꼬박꼬박 정원에서 산책과 더불어 볼일을 해결하는 우리 복돼지를 생각하니 맘이 급해진다. 다급하게 '안된다'고 선을 그으니 설명이 장황하다. 그 긴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하루 아주머니께 풀을 뽑게 하면 1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고, 당신들이 하려니 몸도 안좋으시고 주변의 다른 빌라들은 모두 그렇게 사람을 써서 한다는 요지다. 오직 10 세대만이 거주하니 다른 빌라들보다 관리비가 많이 나와서 더 비용을 책정하기가 어렵다는 하소연과 지금까지 여름이면 그렇게 해왔다는 말씀이시다.

 

정말 기가 막혔다. 그래도 인내를 가지고 제초제를 사용하면 안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말씀드려도 '인체에 전혀 해가 없으며,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하신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렇게 고집을 피우시는 이면에는 거의 모든 세대가 외국인이다보니 적절한 의사소통도 없이 편리성 위주로 일을 하신다는 판단이 들었다. 가능하면 유기농 식품을 먹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결론은 단호하게 '제초제는 안된다. 그대신 우리 정원은 풀뽑기부터 모든 관리를 우리가 할테니 신경쓰지 마시라'로 결론을 냈다.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도 나름 정원을 관리해 오고 있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임을 뼈져리게 느끼며, 윈도우팜을 하면서 감히 농부라고 떠들어 대는 것이 민망하고 부끄럽기조차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과정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폭탄(?)이 말 그대로 예고도 없이 터지고 만다. 지난 화요일 외출하다보니 엘리베이터 옆에 조그맣게 "금일 제초제 뿌립니다"라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었다. 놀라서 근무하시는 분께 여쭤보니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미 뿌렸다'는 대답을 하신다. 수년간 인내와 온유의 도(?)를 닦아온 것이 오히려 수천배의 활성을 보이며 터지는 순간이다. 물론 이분은사전에 대화를 나눴던 관리소장이 아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농부의 목소리는 커지고 빨라진다. 그런 와중에 서울갈 예정이던 진도 엄마가 내려와 사태를 파악한 후, 말 그대로 난리가 나고 만다. 농부보다 더 고음이며 속사포같이 빠른 속도로 화를 내는 진도엄마 덕에 농부는 오히려 말할 기회가 없어진다. 한마디로 전쟁을 치르고 아저씨는 백기를 들며 우리와 진도네 온 정원을 물로 세척하신다. 그래도 농부의 맘은 참담하기만 하다. 땅은 그 모든 것을 삼켜야하기 때문이다...

 

85 세나 되신 노인 (울 엄마)가 쑥을 곱게 키워 재래시장에서 쑥떡을 해다 아저씨들께까지 푸짐히 드리며 나눴는데, 가끔 전이나 튀김이라도 할 땐 그분들 저녁 드실 때 함께 드시라고 서둘러 같다 드리는 마음이었는데, 오며가며 불편해 하시지 마시라고 식사하실 땐 서둘러 현관에 들어 서곤 했는데, 맘이 욱신거린다. 두분뿐인데도 소통의 부재, 그 분들이 살아 오신 세월에 있어 환경보다 앞서는 그저 편하다는 내용들, 모두가 농부의 맘을 힘들게 만든다. 다시는 제초제를 뿌리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았지만, 며칠간은 그 허탈감에 빠져 말을 잃는다.

 

오직 정원에 심길 날을 고대하고 있던 허브들이 베란다를 그대로 차지하고 있다. 정원에 나갈때마다 맘이 쓰려 일부러라도 베란다를 꽉 채운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눈을 맞춘다. 그런 농부를 위로라도 하듯 화분 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나는 주말이다. 지난해 새 식구가 된 Black Pepper Scented Geranium (잎을 손으로 살짝 스치기만 해도 강한 향이 코를 찌른다), 장미 못지 않게 엄청난 인기를 얻는 고가의 향을 내는 Jasmine, 키가 어느새 2 m 에 육박하는 Fennel 등에서 꽃들이 만개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한지 보통 10년 이상에서 최소 3년된 울 엄마의 나무들도 생전 처음 꽃들을 피운다. 아직 그 아이들의 존재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언제나 함께 했던 아이들이 그렇게 생명력있게 살아주고, 또 꽃까지 함께 피워주니 고마울뿐이다.

 

그 아이들에게 위로를 받고 정원으로 다시 나가 본다. 온갖 개미, 파리, 모기 (일주일에 두서너번은 방역을 하는데도), 지렁이 들이 그곳에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혹시나 싶어 진도네 마당에도 가 본다. 그곳에도 늘 있던 조금은 마땅찮은 놈들이 주일의 오후를 즐기고 있다.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진도네 집을 보며 자꾸 웃음이 나기도 한다. 평소엔 말을 잘 못한다고 겸손해하던 진도 엄마의 그 특전사급 (해병대급인가?) 전투력과 "아저씨 도움이 필요하면 저희한테 말씀을 하세요! 저희도 도와드릴께요. 같이 뿔뽑는 거 해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서로 의사 소통 좀 하세요! 커뮤니케이션을 하시라고요! 누가 뭐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책임질께요!" 로 상황을 종료시킨 그녀는 오늘 집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집 마당 풀이 장난이 아니던데... 바로 농부가 자꾸 실없게 웃는 이유이다.

 

내막을 모르시는 울 엄마는 또 정원에 나가 한참 바쁘시다. 이번주에는 농부도 진도네 마당에 가서 땀흘리는 시간을 꼭 내야하지 않을가 싶다. 동물을 허투로 사랑하지 않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전사가 된 그녀, 그런 그녀가 참 고맙기도 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봄 시클라멘이 한창 꽃을 피울때 화분 하나를 안겼는데, 이번엔 무엇을 안길까 하는 즐거운 고민이 농부를 간지럽힌다. 이럴때는 그녀와 주먹을 함께 쥐고 "Fighting!" 을 외친다 한들 "그건 틀린 영어고요, Winning! 이 맞는데요" 라고 정정할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꽉 쥔 주먹으로 그 사람의 이마에 알밤을 먹이며 말하고 싶다: "Fighting for our pl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