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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s Daily Bliss
허브 수확하는 날 본문
어제 이맘때 에어컨을 켜 놓고 버티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집안은 꼭 초가을 느낌이 날 정도로 선선하다. 잠시 후면 창문 몇군데는 닫아야 할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경험만한 지식이 없다는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시간들이다. 이제서야 그런 일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농부에게 있어, 며칠째 계속된 폭염은 거대한 폭군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방에 있는 윈도우팜들은 동향 특유의 새벽 빛이 들고, 그 후에는 그리 강한 햇볕에 노출되지 않으니 그 아이들은 꼭 신선 노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거실에 있는 아이들은 창문이 없는 큰 통유리를 통해 들어 오는 한여름의 햇볕을 온몸으로 부대끼고 있다. 지금 이시간까지도 햇볕이 기웃거리고 있으니, 아무리 좋아하는 햇볕이라 할지라도 버겁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그래서 외출하게 될 때는 마음이 콩닥콩닥해서 돌아 온다. 선풍기의 타이머를 조정해 놓고 나가지만, 장시간의 외출시에는 온통 열어둔 창문들 사이로 그 아이들을 시원하게 해 줄 바람이 여지없이 불었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그런데 그 바람이라는 것조차도 아침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니, 과학은 간데없고 꼭 요행수를 바라는 사람이 된 듯하다, ㅉ ㅉ ㅉ...
오늘 새벽부터 꽤나 선선한 날씨에 농부는 이른 아침부터 외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몇가지 처리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창가의 아이들이 소리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는게 눈에 띄었다. 농부의 염려와는 달리 너무 무성하게들 자라고 있는 허브들이 '허브 밀도' 좀 낮춰달라는 요구이다. 그 중에서도 스피어민트는 보기에도 장관을 이룬다. 그동안 그 아이들을 산뜻하게 만져 줘야지 하면서도, 짬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또 일주일 정도 후에나 가능할 것 같아, 일의 우선 순위를 과감히 바꾸고 가위를 들었다.
그렇게 가지를 치고 깨끗한 허브들을 수확하여 씻어 말릴 준비를 하는데만 거의 4 시간이 소요되었다! 일을 하면서 계속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은 '농부가 가장 바쁜 시즌이 언제지? 씨뿌리는 봄인가, 이렇게 마구마구 자라나서 손볼 일이 많은 여름인가, 아님 수확하는 가을일까?' 였다. 아직도 진짜 농부가 아닌 이 창가의 농부는 그 답을 모른다. 그러나 이 초보 농부에게 있어서만은 '여름' 이 그 답인듯하다.
며칠전에 가지치기를 한것 같은데, 돌아 서면 정말 무섭게들 올라오고 있다. 그런 아이들을 그대로 두면 부정직한 가는 가지와 작은 잎들이 너무 무성해 져서, 정작 실하고 풍미가 좋은 허브를 수확하기가 힘들다. 창가의 농부는 가지를 쳐서 새로이 뿌리를 내리고, 또 새순이 올라오는 곳의 잎을 수확하므로, 일반 진짜 농부처럼 그 과정이 철에 따라 구분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창가의 농부에게 한눈 팔 시간을 주지 않는 이 여름이 가장 번잡스럽고 신경쓸 일이 많은 계절이다.
할 일은 많고 손은 더디다 보니 한 숨이 절로 나오는 시간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울 엄마는 하나에서 열까지 잔소리를 하셔야 되고, 매 10분마다 '어디선가' 번쩍 나타나 안기고 싶어하는 우리 복돼지까지, 농부의 하루는 고난(?) 으로 점철된 인내의 시간이다.
그렇게 투덜대는 농부도 수확한 허브들을 대하는 순간, 모든 시름을 잃고 순수한 수확의 기쁨을 맛본다. 잎이 작고 뾰족하며, 민트류중 성장이 가장 더딘 듯한 쵸코민트는 조금 수확을 했는데도 그 톡특한 향이 압권이다. 사과중 가장 맛있고 달콤한 것의 향과 견줄 수 있는 애플 민트는 수확이 까다로운 반면, 그 연한 빛과 달콤함으로 코를 벌름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 스피어민트는 터줏대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그 수확량이 타의 추정을 불허한다. 뿐만 아니라, 허브요구르트에 사용되므로 식구들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민트 패밀리 중 우유일하게 수확을 하지 않은 것이 페퍼민트다. 아마 다음주쯤이면 그 아이도 자신의 풍미를 한창 뽐낼 듯하다.
아, 그리고 민트 패밀리이지만, 사촌쯤 되는 레몬밤은 워낙 가지치기로 번식을 많이 해서 수확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새순이 난 놈들을 위주로 아주 조금 거두었다.
이렇게 다양한 민트 패밀리들과 겨루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두 아이가 있다. 바로 바질과 타임이다. 바질은 어느 정도 크기의 잎을 모두 땄는데 속된 말로 향이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신선한 색감에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이다. 저녁에 이 바질을 넣고 맛있는 파스타를 신나게 만들어 먹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몇시간 전부터 저녁으로 '짜장면'을 주문하고 계신 왕비마마의 어명을 거스를 수가 없다, 에구에구...
마지막으로 타임, 이 아이의 향도 참 독특하다. 더운 날씨탓에 얼굴에 뭐가 올라오는 바람에, 요즘엔 타임 인퓨전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타임 인퓨전은 만들기도 쉬울뿐 아니라, 항균성이 있어 여드름이 나는 얼굴에도 아주 좋다. 어제는 집에 와서 벌개진 얼굴에 타임 인퓨전을 얼려 만들어둔 아이스 큐브를 얼굴에 대고 살살 문질렀더니, 자기 전에 들여다 본 내 얼굴이 너무 고와 보였다 (좀 민망하여라).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의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한 생각이 든다. 농부의 수고를 생각하여 밥알 하나도 헛되이 버리지 말라는 말을 소귀에 경읽듯 하던 농부가, 요즘 그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 아이들을 살피고야 잠자리에 들 정도다 보니, 수확할 때에 그 소중함을 뼈속까지 느낀다. 그래서 물에 씻을 때도 허툴게 버려질까 조심, 또 조심한다.
이런 농부의 삶, 그거 참 괜찮다 싶은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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