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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e de Vivre

벌써 가을이 그리워지는 농부

디돌 2012. 7. 7. 22:08

깜짝 놀랄 일의 발표를 조금 앞두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런 때일수록 주변은 언제나 순풍만 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시간들이다. 순풍이 아니더라도 그저 평상시 같기만 해도 좋으련만 중요한 때일수록 온갖 일들이 벌어지니 그것이 삶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런지 싶다.  

 

제초제 사건이후 정원에서는 오뉴월 때약볕에 땀흘리며 심고 혹여 마를까 수시때때로 물을 먹여 키운 곱디고은 민트를 황당한 구멍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게 하는 일이 벌어져 우리를 경악하게 만든다. 생각같아서는 CCTV 를 판독하고 싶지만 가뜩이나 움추러져 방어적이 된 경비분들을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 흔적을 사진으로만 남긴다. 그래도 그렇게 휑한 민트 자리만큼이나 농부의 마음에도 흉흉하게 상처 구멍이 생기는 것을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디 그뿐인가? 몇달전 다시마를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지난주 다시 사다 놓은 다시마가 철없는 팔순 노모를 휘저어 놓는다. 적지 않은 양을 모두 드셨으니 아무리 건강하시다 한들 어느 배가 감당해 낼까 싶다. 그렇게 농부의 지난주는 또다시 죽과의 전쟁을 벌이며 시간과의 싸움에서 살아 남고자 정신이 없다.

 

그렇게 온식구의 혼을 쏙 배놓으신 울 엄마는 건강이 회복되자 마자 말그대로 집안을 안팎으로 휘저으시며 연발 사고를 치신다. 그래도 주변분들 말씀대로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감사' 하다고 위안을 삼는데, 이번에는 우리 복돼지가 홈런을 치고 만다. 남들 입맛없다는 여름에 어찌 식욕이 좋은지 아슬아슬했는데 결국엔 모든 식구들의 눈물을 쏙 빼 놓는다.

 

평소 아이를 '굶겨 죽인다'는 잔인한 말을 들으면서도 그렇게 살찌지 않도록 노력을 했는데, 병원에 가보니 비만일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디스크 증상이 온 것이다. 한창 비가 쏟아지는 날, 복돼지를 안고 그 먼 종합 병원을 오가는 농부의 모습은 '사흘에 피죽도 한그릇 못먹은 사람' 그 자체였다...

 

그렇게 중요한 순간들에 끼어든 얄밉도록 힘든 상황들을 겨우 진정하고 정원에 나가보니 그곳에선 또 다른 선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열매를 맺기엔 어리다 싶은 무화과 나무에선 하나지만 튼실한 무화과가 누가 볼새라 그 무성한 잎들사이에 꽁꽁 숨어 있다. 살짝 사진을 찍고 누가 알새라 잎들을 원상복귀시킨다.

 

힘이 넘쳐나는 만큼 목소리가 큰 울엄마가 거의 소리를 지르신다: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렸어! 대추나무에 꽃도 많이 폈다. 봤니?" 놀란 농부는 다시 테라스앞의 큰 감나무앞에 선다. 그렇다 어릴적 고모집의 그 너른 마당에서 본 그 감들과 같은 감들이 아주 실하게 달려있다. 바로 저 감들때문인가 보다. 까치 녀석들이 물과 조를 준비해둔 진도네 마당은 아랑곳 않고 언제나 농부의 마당을 맴도는 이유가 말이다. 그렇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지금은 안정, 또 안정을 취해야 하는 복돼지지만 옛날부터 까치 쫒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니 그리 수월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 그게 아닌가? 올려다보니 감나무의 키가 엄청 크다. 우리 복돼지는? 허리가 긴 반면 다리는 짧다....

 

아, 대추나무라... 그리고 꽃이 핀 대추나무라...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단번에 알아 볼 수 있다. 유일하게 지금 꽃을 피우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세월을 읽을 수 있는 당당함, 바로 벽을 따라 그늘을 만들어 주는 그 나무들이다.

 

뼛속까지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벗어나 느긋한 평화로움에 둘러쌓인 느낌이다. 고금의 많은 현인들의 말까지 떠 올릴 필요도 없이 농부는 '산너머 산'을 넘다가 결국엔 '아름다운 평원'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한다. 때가 되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과실들이지만 저렇게 생명력있게 자기의 열매를 내놓고 때가 되면 거두게 하는 자연, 그 자연에서 위로와 휴식을 얻게 됨을 참 늦게도 알게되는 더딘 농부이다.

 

괜스리 감성적이 되는 저녁이다. 장마때치곤 초저녁 바람이 가을의 선선함을 몰고 온다. 가을... 그 가을이 오면 모든 이들이 자기만의 산을 넘어 평화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한 여름의 어느 순간에도 농부는 목 길게 빼고 다가올 가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