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람의 마음이 묘하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무언가 풍족하고 편안하게 사용할 때는 그 귀중함을 모르다가, 조금의 부족함만으로도 그 존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인터넷만해도 그렇다. 짱짱한 속도로 팡팡 터질 때는 조금 있다가 글을 쓰면 되겠지 하면서 속절없이 미루다가 그날을 넘기게 될 때가 여러번 있었는데, 요 며칠 느림보 행보를 하는 인터넷을 붙잡고 뭔가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농부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움 그 자체이다, ㅎ ㅎ ㅎ...
느린 아점을 먹고 모든 식구들이 잠시 살아 (?) 움직이는 듯 하더니, 오후 2시를 기점으로 모두들 침대를 등에 붙이고 오수를 즐기는 바람에 집 안에는 윈도우팜 아이들의 물소리와 농부만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이 농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놈이 있으니 바로 우리집 복돼지이다.
한참 사이드 테이블 밑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려 살며시 일어나서, 1 미터는 족히 자란 방울 토마토를 만져 보려니 졸린 눈과 비틀거리는 걸음거리로 다가와 끙끙거린다. 그 모습이 정말 가관도 아니다.
이 놈을 보면서 외모에 헤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 새삼 깨닫는다. 평소 여성의 외모와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여자는 머리 스타일이 반이다' 라는 말이 떠 오른다. 예전에는 '여자는 피부가 반이다', '여자는 눈이 예뻐야 한다', '여자는 각선미가 죽여줘야 한다'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말들을 들으면서, 아니 이 모든 퍼센티지를 다 합하면 도대체 어떤 계산이 나오지하는 의문이 들곤 했었다, 어리석게도...
그런데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복돼지의 계절별 모습은 정말 극과 극으로, 헤어에 따라 다른 아이가 되고 만다. 오늘 아침 웬지 생기발랄하게 공놀이를 하는 녀석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요즘은 어찌 잔머리를 잘 굴리는지, 너무 귀여여 그 모습을 한번 담아 보려고 하면 어느새 숨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찍은 사진이 많다.
오늘 아침 자기 침대에 들어 있는 공을 노려보고 있는 복돼지의 모습은 전형적인 여름 스타일이다. 틈만 나면 가위와 전문적인 헤어 도구를 들고 복돼지를 괴롭히는 할머니 덕에 숏 커트의 진수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 아이의 5월 모습은 새삼 농부의 눈을 의심케 만든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비교해 보니 그나마 우아함(?)이 살짝 엿보이는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웬지 남자 아이의 포스가 느껴진다. 반면 오늘 아침 급하게 찍은 사진은 촌스러운 말괄량이의 모습이면서도 사랑스런 여자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며칠전 밤 산책에서, 몇달 동안 보지 못했던 레오 (Leo) 를 만났다. 레오는 골든리트리버종으로 정말 덩치도 크고 잘생겼으며 스타일이 사는 놈이다. 난 혹시 레오가 우리 복돼지의 변한 모습때문에 몰라볼까 걱정했는데, 역시나 아니었다. 그 점잖은 아이는 언제나처럼 젠틀한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이다. 그렇지만 우리 복돼지는 그런 레오에 눈길 한번 주지 않으니, 농부의 사교 교육에 문제가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원래 우리 복돼지는 외모에 관심이 없다. 다른 아이들은 '예쁘다' 라는 말에 무척이나 잘 따른다는 데, 우리 복돼지는 그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저 머리 위에 집게핀 하나 꽂는데도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쩝. 그러나 삶 자체가 변하다 보니, 농부의 생각도 많이 변하고 있다. 그래, 너만 편하면 됐지, 뭔 스탈이 중요하겠냐? 그저 이 여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주기만 하면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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