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일간 집에 소홀했더니 모두가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다. 농부는 우울증을 걱정하기 전에, 심한 감기 몸살에 이틀간 꼼짝을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침실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22일 새벽까지 정리되지 않는 현장에서 꼼지락대고, 집에 와서는 몇가지 준비해서 보내다 보니 아침이었다. 정말 조용히 준비해서 차분히 사람들을 맞게 해주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바람과는 정반대로 개소식이라는 행사를 준비하다 보니 이런저런 잔신경이 더 많이 쓰인게 사실이다. 제 몸도 못가눌 정도의 모습으로 인사를 나누기도 뭐하고, 뒤에서 조용히 받쳐 주는 게 임무라 생각하는 지라 농부는 정작 맘 편하게(?) 몸져 누울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수고로 행사가 잘 치뤄졌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까지도 쉬지 못하는 몇몇 동료들을 생각하니 맘이 짠하다. 그 와중에 땡잡았다고 농부의 옆에서 내리 잔 놈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집 복돼지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설때 마다 가지 마라고 생때를 쓰더니, 지난 이틀간 끙끙 앓는 농부 옆에서 코를 드르렁 거리며 자는 모습이 그동안 이 아이의 맘 고생을 느끼게 만든다.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오니 들이 비치는 빛이 어찌 따뜻하고 포근한지 맘이 평안해 진다. 어디든 졸졸 따라 다니는 복돼지는 햇볕이 잘 드는 의자에 냉큼 올라가 농부를 감시한다. 전국이 한파주의보라고 야단법석인데, 별 난방을 하지 않아도 거실은 봄날과 같은 분위기를 낸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새삼 자연의 그 위대함에 고개가 끄떡여 진다.
현장에는 잔뜩 벌여 놓고 마무리는 못한 부분도 있어 당분간은 몸을 더 혹사 시켜야 될 듯 하다. 저녁에 통화해 보니 볕이 드는 낮에는 포근한데, 저녁에는 손이 곱을 정도란다. 옛날 건물에 창이 부실하다 보니 바람이 숭숭 들어 온다. 내일 일찍 서둘러 바람막이를 해야겠다. 좀 더 준비를 한 후 지인들을 정식으로 초청해서 맘껏 회포를 나누고 싶다. 기관의 행사로 개소식을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께 일부러 알리지 않았는데 섭섭해 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꼼꼼이 점검하고 보완한 후 됐다 싶으면, 많은 분들과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바램이다. "복돼지! 너도 한번 데려가 줄 테니 너무 보채지 말고 집이나 잘 지켜. 그런데 너를 위한 메뉴론 뭐가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