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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천성은 무엇과 닮았는가? 개구리인가, 전갈인가, 아님 수도사인가? 본문

Joie de Vivre

당신의 천성은 무엇과 닮았는가? 개구리인가, 전갈인가, 아님 수도사인가?

디돌 2012. 1. 19. 21:54

지난해 여름, 나의 친구 D 가 매년 그랬듯이 한국에 있는 나를 방문했을때 일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을 가고 있는데 어느 아주머니께서 길을 물으신다. 마침 농부가 아는 곳이라 알려드리고, 차 한잔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는 아주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너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내가 여러번 말했지? 몇년전에만 해도 우리가 함께 길을 가면 너보다는 외국인인 내게 사람들이 길을 묻곤 했지, 기억나? 지금은 어때? 사람들이 네게 말을 건네고 있어. 그리고 곧잘 너는 웃고 있어... 뿐만 아니라 너는 백화점이든 마트든, 그 어디서나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잖아?" 

어찌 들으면 욕으로 들릴 법도 한데,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다. 농부는 늘 피곤했다. 일 위주의 삶으로 인한 고단함도 한 원인했겠지만 어디를 가나 예의없는(?) 사람들, 본인의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않는 불성실한(?) 사람들, 농부의 시각으론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이유는 끝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이전의 농부를 신은 몹시 불쌍하게 여기셨나보다. 지금도 농부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한순간에 모두 내려 놓으라 하신다. 한편으론 홀가분함도 느꼈지만, 달라진 일상이 너무 생소해 몇년을 어정쩡한 모습으로 살았다.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타의에 의해서든,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든 나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언제나 나를 쥐고 있었다. 

그런데 달라졌다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100 퍼센트는 아니지만, 나의 부족함을 알고 그 부족함을 드러낼 줄도 알고, 무슨 음식이든 여기저기 나누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음식 담은 그릇을 들고 앞집, 경비실 등을 오가는 농부의 수선스런 모습을 곧잘 볼 수 있다. 예전엔 울 엄마의 그런 행동에 버럭버럭 화를 내던 농부였는데, 때론 이런 문제로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암튼 이제 며칠만 있으면, 또 멀리 있던 가족들이 모인다.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농부는 명절이 지옥같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겉으로만 돌던 못된 구성원이었다. 그런 농부를 한결같이 너그럽게 대해준 가족이 요즘은 새삼 고마울 뿐이다. 모두가 '이게 내 모습이야. 그래서 어쩌란 말이야?' 라고들 떠드는 곳에 평화는 없다. 우리는 좋은 말로 이런 것을 '개성'이라 표현하겠지만, 너무 개성만 내세운 곳엔 조화가 자리할 수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니 이도 참 감사한 일이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이때, '치유'라는 분야에 관해 부부가 함께 연구하고 집필하는 Ed 와 Deb Shapiro 의 글이 눈에 띄어 옮겨 본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개구리와 전갈'의 우화는 알고 있겠지만, 그다음 '수도사와 전갈'의 이야기는 어떨까? 

나의 나됨을 무어라 탓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됨에 집착해본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며, 우리의 아름답고 행복해야할 삶을 피폐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직도 좌충우돌하며 삶을 배우고 있는 농부인지라, 더 깊고 심오한 이야기를 논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아래 글을 읽으며, 더 맘이 긁히는 아픔이 전해지는 것일까?   

    

우리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고 Ed 의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돌아왔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인도를 여행할 때 기차안에서 겪었던 무서운 이야기를 말해줬다. 기차안은 매우 붐볐고 Ed는 자신의 팔로 Deb을 감싸안아서 좀더 가깝게 붙어 앉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공공장소에서 여성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전통으로 인해 기차안의 한 남성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화를 내며 모욕적인 언사를 하기 시작하더니만, 심지어 Deb에게 폭력을 행사하려고까지 하였다. 그는 Deb 이 창녀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 듯 하다.   

우리는 문화가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오해의 한 예로 이 이야기를 가족과 함께 나누려고 한 것인데, Ed의 사촌이 언제나처럼 Ed를 비방하기 시작했다. Ed 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아마 당신의 가족중 이런 사람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가 Deb을 팔로 감싸기전에 그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했다고 고함을 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흥분하여 그녀가 생각하는 그의 나쁜 행동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고함치지 말라고 부탁했더니, 그녀는 "그만둘 수 없어. 아런 모습이 바로 나기 때문이야!"  

Ed의 사촌은 대부분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 자신을 확고한 사람, 또는 변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누구나에게 있다. 당신은 개구리와 전갈에 대한 이 이야기를 아마 들었을 수도 있다:

어느날 개구리 한마리가 강변에 즐겁게 앉아 있었다. 그때 전갈 한마리가 다가왔다.

"오, 개구리 양반" 전갈이 말했다. "내가 강 반대쪽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건너가야 합니다. 저를 강건너까지 태워 주실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전갈씨, 내가 당신을 태워 주면 나를 쏠거잖아요!" 라고 조금은 어안이 벙벙해진 개구리가 대답했다.

"아뇨, 쏘지 않겠습니다" 라고 전갈이 말했다.

"약속할 수 있습니까?" 라고 의심스런 어투로 개구리가 물었다.

"정말로 약속합니다! 당신을 쏘지 않겠습니다" 라고 전갈이 말했다.

"정말로, 정말로 약속할 수 있습니까?" 여전히 의심스러워하며 개구리가 물었다.

"그럼요,

정말로

약속합니다" 라고 전갈은 아주 진심으로 대답했다.

"좋아요" 개구리는 마지못해 말했다, "제 등에 올라 타세요."

전갈은 개구리의 등에 올라탔고 그들은 출발했다. 강의 중간쯤에 도달했을때, 전갈이 개구리를 쏘았다. 너무 놀라 더이상 헤엄칠 수 없게되어, 모두 물에 빠지게 된 상태에서 개구리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전갈씨. 우리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기 전에 한가지만 말해주세요. 날 쏘지 않겠다고 그렇게 약속해놓고 왜 그랬지요? 왜 나를 쏘았는지 제발 말해달라고요!"

"왜냐하면 그것이 내 천성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전갈이 대답했다. 

전갈을 멸시하려는 의도없이, 이 이야기는 전갈의 천성이 어떻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는지 보여준다. 전갈이기때문에 이와 관련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전갈은 언제나 그렇다.

우리 대부분도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변할 수 없고, 그런게 난데 어떻게 변하겠어, 그리고 변하고 싶지도 않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확고하게 자기 생각에 몰두할 수 있는지, 변할수없고 적응이 불가능한, 심지어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전갈은 필요에 따라 다르게 행동할 수 없지먼,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선택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천성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으로만 살아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실제로 다른 모습일 수 있고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  

19세기 철학자인 William James 는 "

우리 세대의 가장 위대한 혁명은 인간이 그들 마음의 내적 태도를 바꿈으로써, 그들 삶의 외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타인 중심의 사고에 눈뜸으로써 우리 천성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바꿀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이기심 대신에 관대함을, 악의 대신에 친절을, 그리고 해를 끼치는 대신에 피해를 주지 않는 그런 선택을 가지게 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의 남은 부분을 마저 해보자:

두 수도사가 강가에서 그릇을 씻고 있을때, 물에 빠져 죽어가는 전갈을 발견했다. 한 수도사가 얼른 달려가서 전갈을 건져내어 강기슭에 올려 놓았다. 그런 와중에, 전갈에 쏘였다. 그는 다시 강가로 돌아와서 자신의 그릇을 씻는데, 그 전갈이 다시 강에 빠진 것을 보았다. 그 수도사는 전갈을 구해주는 과정에서 다시 쏘였다.  

다른 수도사가 그에게 물었다. "친구여, 전갈의 천성을 잘 알면서도 왜 자꾸 구해주는가?"

"왜냐하면," 첫번째 수도사가 대답했다, "구해주는 것이 나의 천성이기 때문이라네."

자, 당신의 천성은 무엇과 닮았는가? 개구리인가, 전갈인가, 아님 수도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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