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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e de Vivre

농부의 겨울준비

디돌 2012. 12. 1. 18:10

 

 

유별난 관리 아저씨는 이리저리 떨어지는 단풍잎과 낙엽이 귀찮으신지 아예 나무를 뒤흔들고 계신다. 그냥 두어도 괜찮다고 말씀드리려다 입을 꼭 다문다. 추운날 매번 쓸어 내는 일이 번거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맘이 다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생각과 뜻을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또다른 행복의 요소라는데 새삼 고개를 끄덕인다.

 

어지간해선 봄날같은 마당에도 겨울의 냉함이 들어선 첫날이다. 며칠까지도 철모르게 피었던 마당의 진달래가 입을 꼭 다물었다. 많이 추운가 보다. 이런 계절엔 귀한 허브종들을 구하기가 힘들다. 모든 사람들이 봄에 기대하는 것을 농부는 찬바람 불고 추운 날에 웬지 더 필요하다는 느낌이다. 새로 만든 시스템에 여러 종의 허브를 시도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그래서 하루 팔을 걷어 부치고 씨앗을 뿌렸다. 바질부터 마조람까지 화분에 씨를 뿌리고 준비하느라 바쁜 날이다.

 

뭔가 열중할 땐 주변의 한마디에도 예민해지는데, 우리의 두 강적은 전혀 개의치않고 일을 끝낼때까지 철저하게 적군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봄에 부추부터 상추까지 무려 10여개가 넘는 큰 화분에 씨를 뿌리시더니, 물을 너무 자주 많이 주신 당신의 잘못은 생각도 않으시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만 해대시던 울 엄마는 이래라저래라 상전노릇을 너무 즐거워하신다. 게다가 울 복돼지는 기껏 씨를 심어논 화분에 어느새 코를 박고 난리를 떤다. 눈이 마주치자 '전 그저 냄새만 조금 많았을 뿐이예요...' 라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눈을 내리 감는다. 그렇지만 마무리해 두었던 화분은 이미 푹 파여졌고 그 아이의 입과 코 주변은 온통 흙투성이다. 벌을 주려고 벌떡 일어나니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향한채 항복해 버리고 만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뭐라지 마라. 애 기죽는다!' 라고 선수를 치시는 울 엄마땜에 더 열이 난다.

 

모든 일이 그렇듯, 그런 역경을(?) 꿋꿋이 견디고 열심히 했더니 오롯이 씨앗을 품은 화분이 방안 창턱에 고스란히 올라앉았다. 이제 막 심었을 뿐인데 농부의 눈엔 이미 새싹을 틔우는 모습이 온전히 보인다. 지천으로 식물이 널리는 봄보다, 그렇게 겨울에 싹을 틔우는 아이들이 농부에겐 참 기특하고 예쁘다. 그리고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고운 그 아이들이 어느 정도만 자라면 새로운 시스템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정말 다양한 모습의 그림을 담아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뻘쭘하게 흙만 담은 듯 느껴지는 휑한 화분들 옆에 타임과 포인세티아를 슬쩍 끼워 놓는다. 12월만 되면, 아니 11월부터 그 예쁜 붉은 색만 보면 맘이 설렌다. 우연히 우리 집에 들어온 작은 두 화분이 참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베란다엔 아직도 노랑과 보라색 국화가, 사시사철 계절을 잊고 피어대는 시클라멘의 다양한 색이 공존하지만 이 스산하지만 축복받은 12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식물은 포인세티아라는 생각이다. 마당을 놀이공간 삼아 엄청난 활동을 펼치는 우리 냐옹이 세마리만 생각해도 추운 날이 걱정으로 와닿은데, 여러가지 걱정과 부족함으로 눈물흘리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은... 그저 모든 이에게 축복의 12월이 되길 바라는 맘에 두눈이 절로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