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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 Who?/Cats

Grey, are you sure... that you're a cat?

디돌 2012. 12. 17. 22:31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지만, 그런 말에 별 신경쓰지 않고 살아온 농부를 심하게 흔들고 있는 대상이 생겼다. 고양이들이다. 관심은 커녕 혹여라도 마주칠까 두려워하던 녀석들이었는데 요즘엔 눈에 띄는 아이들마다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사실 볼일도 거의 없었다는 말이 맞을 듯하다. 그런데 올해에는 그저 넋을 일을 정도이다.

 

모녀인지, 부녀지간인지, 아님 모자나 부자지간인지는 모르겠지만 lara 와 cathy 가 마당을 차지할 때까지만 해도 그저 '참, 이쁜 아이들이구나!' 였다. 그런데 10월 말 언젠가 '강적'이 나타났다. 어느날 저녁 마당에 나가니 덩치 크고 모양새도 흔하지 않은 새로운 아이가 터줏대감들의 밥그릇에 코를 박고 있다. 아직 어린 cathy 는 조금 겁을 먹고 주위를 맴도는 상황이다. 그 후로 며칠간 기존 아이들과 새 아이의 관계를 살피느나 농부의 맴은 아주 복잡하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사랑과 걱정이 가득한 울 엄마는 아침 저녁으로 이 아이, 저 아이 바꿔가며 걱정을 위한 걱정을 해대신다. 그런데 정작 새로운 강적은 어찌 판단력이 정확하고 빠른지, 잠시의 두리번 거림 후에 바로 상황을 종료시키고 만다.

 

십수년을 같이 산 복돼지 보다 더 붙임성이 좋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라는 아이다. 게으른 농부는 아직도 고양이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귀동냥으로 들은 내용은 이 아이들이 상당히 독립적이고 오만하다고 들었는데, 이 아이는 자기가 사람인줄 안다고 밖에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저 안아 달라고 보채고 잠시도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첨엔 너무 적응이 안되어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한달이 넘은 지금은 그 아이도 귀한 우리 식구가 되어 있다. 영리한 그 아이는 울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호사를 누리고 있다. 가뜩이나 정이 많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울 엄마를 완전히 사로잡고 만다. 복돼지 산책시키는 시간엔 기적같은 아름다운 그림이 펼쳐진다. 울 엄마가 복돼지를 안고 나서면 그 아이가 먼저 앞서 걸으며 안내를 한다. 혹여 발걸음이 늦으면 잠시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앞 뒤 마당을 한바퀴 돌고 볕좋은 곳에 앉으시면 어린 cathy 까지 나와 재주를 부린다. 물론 우리 복돼지는 땅에 내려 놓는 순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그 아이들을 쫓기 바쁘다. 그래도 절대로 상하게 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요즘엔 어찌 마당에 나가려는지, 또 마당에 나가면 그 아이들이 나타날 때까지 '흥흥' 거리며 기다리는 모습이다. 어떤 날엔 할머니 주위로 옹기 종기 모여 노는 그 아이들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아우성치는 기쁨을 숨길 수가 없다.

 

그 아이는 러시안 블루라는 태생이다. 농부는 그 아이에게 웬지 슬퍼 보이는 blue라는 용어 대신 매혹적이고 우아한 grey 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그 아이를 보는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너무너무 사랑받고 자란 아이인 것 같은데...' 라고 말을 흐린다. 처음 보았을 땐 그 아름다운 몸에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더니만 이제는 제법 살이 붙었다. 나름 방풍과 방열 구조로 이 아이들의 거처를 만들어 두었는데, 다른 두 아이들은 수시로 마실을 나가는 반면 이 아이는 언제나 집을 지키고 있다. 이런 아이가 자발적으로 집을 나왔다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첨엔 농부도 기존의 두 아이 땜에 아는 분께 보내려고 청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분께 안기고 돌아 서는데 도망을 쳐서 다시 마당 어딘가로 숨고 만다. 놀란 농부가 부르자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나무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위치를 알린다. '괜찮다'고 어루자 살포시 나와 안긴다. 우리는 그렇게 그 아이를 식구로 맞았다. 이런저런 걱정이 앞섰었지만, 지금은 이 아이로 인해 울 엄마의 행복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감사해 한다. 물론 이 아름다운 동화에도 악당은 있다. 일하시는 아저씨들은 이래저래 불편해 하시는 기색이다. 그렇지만 그정도의 악당은 농부 혼자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여서 농부집 이야기는 여전히 즐겁게 진행중이다.

 

악당이 돌을 들고 지키는 곳을 통과해서 도로에서 높이 올라 있는 농부의 집 마당 깊숙한 곳까지 올라온 아이들, 그 아이들을 당신의 충직한 똘마니들로 여기며 세를 키워나가시는 울 엄마, 시간 날 때마다 '너는 할머니도 있고,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지만 저 아이들은 할머니도 없고,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어. 그런 불쌍한 아이들을 괴롭히면 안돼. 잘 보듬어 줘야되지?' 라고 세뇌 당하느라 뚱하지만 그래도 마당 가득 뛰어다니며 놀 친구들이 생긴 것에 마냥 행복한 우리 복돼지, 녀석들 먹여 살릴래나 혹여 악당들이 괴롭힐까 살피느라 정신 없는 옆집 진도 엄마와 농부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에 어리둥절해 한다.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것, 그 것 참 진기하고 설레는 과정이다. 이해하기도 전에 가졌던 편견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날들이다. 조금 철이 들어 가나 싶은 농부는 그도 잠시다. 조금만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어도 이해는 뒷전이고 '왜 저러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드니 말이다. 유난히 추울 거라는 올 겨울, 이해되지 않는 다는 이유로나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판단하고 툴툴대는 일만 버려도 그저 품어줄 수 있는 따뜻함으로 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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