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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s Daily Bl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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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Cares? "We Do Care!"/Handmade

뜻밖의 기쁨

디돌 2011. 9. 14. 23:17

꼭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요즘 농부는 '뭘 먼저 해야 하지?' 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있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 이래저래 근 열흘이라는 시간이 어느샌가 휙 지나가 버린 느낌이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엄청난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어서 기쁘기도 하지만, 내일이면 개학인데 방학숙제를 하나도 못한 초등학생의 모습이 꼭 현재의 농부이다.

농부의 천사표 친구는 출국하는 공항에서 이른 이메일을 날리고, 또 도착했다고 메일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부모님의 근황과 에센셜 오일을 쇼핑하러 간다는 내용까지 아주 깔끔하게 부지런히 날리는데, 농부는 풀리지 않는 피곤에 정신이 흐릿하다. 한편으론 교수인 그 친구는 하루에 몇시간을 떠 들어도 당해낼 체력이 있겠지만, 농부는 하루 종일 떠드는 것이 체력 고갈의 지름길인 사람이다. 이렇게라도 위로를 해야지, 않그러면 이 부실한 체력에 자폭(?) 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일년을 기다린 보상으로 일주일을 빡세게 함께 보낸다. 이른 브런치를 시작으로 마지막 'Good night!' 인사를 나눌 때까지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각종 이야기와 프로젝트에 관한 의견을 나눈다. 정말 다양한 범주의 이야기들을 두루두루 섭렵한다. 그래서 중간에 잠시 낀 사람은 우리의 대화를 따라 오지 못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 많은 내용들 중에서 그녀가 가장 눈을 빛내며 좋아서 어쩔줄 몰라한 것은 정말 의외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궁금해 했던 윈도우팜에 대해서는 '저런 시스템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에 대한 감탄' 정도를, 조금 부족한 이웃들과 함께 하고자 준비중인 기획에는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라 하더니, 우연히 집에서 만들어 쓰는 스킨 제품에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본인의 말대로 다른 쇼핑에는 그리 흥미를 보이지 않는 편이지만, 스킨 제품에는 열광하는 친구이다. 이번 방문에도 그녀가 좋아하는 브랜드중 하나인 L'OCCITANTE 를 사와 농부에게 안긴다. 그때 농부는 조금 부끄럽게 집에서 만든 허브 토너와 바디 로션을 선보였다. 그냥 농부가 집에서 온갖 것을 만들어 쓰고 있다는 설명의 일부였는데, 그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농부가 만든 제품을 써 보더니 급기야 좀 더 가지고 가고 싶단다. 생전 뭔가를 달라고 말한 적이 없는 친구다. 그러면서 친한 세 친구들 사이에 나누었던 오래된 이야기를 꺼낸다. 10여년 전에 그들은 각자 자기가 운영하고 싶은 shop 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 발리 나이트 클럽 폭발 사고로 숨진 Megan 은 평소 공주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옷가게'를, Audrey 는 '서점'을, 그리고 내 친구는 '바디용품점'을 선택하였단다. 

농부는 그녀의 흥분에 놀란 나머지 '그저 100% 천연 재료로 집에서 만들어 쓰려고 만들었을 뿐이라'고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각종 상황을 만들어 가며 너무 즐거워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에센셜 오일을 직접 사서 우편으로 보내겠다고 성화다. 그리고 그다음에 덧붙이는 말은 농부가 향후 만들 스킨 제품을 꼭 보내 달라는 부탁이었다. 미국에 계시는 부모님과 친척, 친구들에게도 보내고 싶단다. 이런 그녀의 적극성에 농부는 그러마고 대답하며, 그녀가 떠나기전날 밤 또다시 제품을 만들어 안겨 보냈다. 

그녀의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이곳의 몇분께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에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를 구입하여 두종류의 제품을 담아 두었다. 지나친 포장을 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그저 간단하게 리본으로만 묶어 본다. 점점 건조해지는 계절에 촉촉하고 부드럽게 피부를 지켜줄 수 있도록 주변의 열심히 사는 분들께 이 작은 선물을 드릴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친구가 떠나면서 당부한 대로, 나만의 작은 lab. 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이 모든 것이 천사로 부터 받은 뜻밖의 기쁨이었으니, 참 복도 많은 농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