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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s Daily Bliss

또 다시 먹는 이야기 - 새싹 호박전 그리고 용감함에 대하여. 본문

Who Cares? "We Do Care!"/Our Planet & Healthy Life

또 다시 먹는 이야기 - 새싹 호박전 그리고 용감함에 대하여.

디돌 2010. 11. 22. 21:58

처음 것에 대한 집착은 생각 보다 큰 모양이다. 토요일 저녁 비빔밥을 해 먹고 조금 남겨 두었던 야채를 어떻게 먹을까 궁리하다가 마침 호박전을 만들 때 살짝 올려 보았다. 본래 요리에 대한 지식이 없던 터라 용감하게 이런 저런 시도를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지도 모른다. 처음 생각엔 맛보다도 보기가 좋을 듯하여 전을 부치는 마지막 쯤에 그냥 살짝 올려 보았다. 생각대로 상큼한 녹색이 또 다른 시각적 효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호박사이로 사각 거리며 씹히는 맛이 꽤 괜찮은 편이다.
이렇게 토요일, 일요일 이틀에 걸쳐 동일한 야채를 사용했지만 전혀 다른 풍미를 느끼게 되자 나는 차츰 더 용감해 질 것 같다. 용감하다는 말이 나온 김에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적어 볼까 한다.
10여년 이 맘 때였던 가, 파리에 열흘 넘게 머무를 일이 있었다. 일이 일찍 끝난 어느날 저녁 편안한 분위기의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였다. 음식에 소심하고 까탈스러운지라 조심스럽게 추천 메뉴를 물었더니 지배인이 자신있게 굴요리를 권했다. 굴요리에 관한한은 너무나도 관대한 나인지라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 추천을 받아 들였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onion soup 한 사발을 낑낑대며 먹고 있을 때 -약간 쌀쌀한 저녁에 뜨끈 뜨끈한 음식이 그리워서 무척 반가운 게 첫인상이었고 그 다음 든 생각은 이것만으로도 배부르겠디 였다 - 큰 접시에 맵시있게 담겨져 나오는 생굴을 마주 하게 되었다.
지배인은 영어가 서툴고 나는 불어가 안되니 우리는 어중간하게 영어와 불어의 그 어디쯤에서 요리에 대한 설명을 주고 받았는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지배인에 의하면 접시의 굴들은 각각 다른 지방의 굴들로서 그 지방 특유의 맛을 음미할 수 있을 거라는 다소 황당한 말을 하는게 아닌가?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생굴을 하나 둘씩 음미해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굴을 좋아한다 뿐이지 한국에서도 어느 굴이 좋고 또 왜 좋은지 그리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니 10여개 가까이 되는 생굴의 출신 지역에 따라 맛이 다 다름을 어찌 이 평범한 혀가 알 수 있단 말인지...
암튼 결론을 말하자면, 모두 짭짜름하게 똑같이 느껴지는 생굴을 초장(?)도 없이 먹으면서 onion soup을 안시켰으면 허기질 뻔 했겠구나 하는 우스꽝스러운 안도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추가로 이 사건에 종지부를 찍자면, 끝까지 자신의 추천에 대한 지대한 찬사를 기대하고 있던 지배인의 기대어린 질문에 나는 그저 웃어 줄 수 밖에 없었던 싱거운 저녁이었다.

나는 그 때 이후로 지금까지도 굴을 비롯한 모든 식품은 그저 제철에 먹으면 맛있다는 생각뿐인데, 키우는 놈들 때문에 점점 미각, 후각과 시각이 점점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해 줄 것 같은 환상을

같게 된다. 내일은 내 방 창가에서 자라고 있는 허브 중 하나를 느껴볼 까 한다.